지난 발행글 2023.09.27 - [매일의 생각] - 11) 내 성격에 대한 고찰 (1) - I___ 에 이어 나의 성격, 그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내 성격 유형을 나타나는 MBTI의 두 번째 알파벳은 N이다.
당장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심이 많고, 그것들을 동기 삼아, 혹은 그것들에 영감을 받아 어떤 일을 해 나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는 거의 모든 의사 결정이나 선택의 상황에 놓였을 때, 현실에만 집중하기 보단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시나리오들에 더 높은 비중을 두고 지금 내 눈 앞에 놓인 것들에 대한 결정을 내리곤 한다.
내가 여태껏 관찰해 온 나의 여러 가지 모습 중 N의 성향을 띄는 대표적인 예시들은 다음의 네 가지 제목 아래 그룹화할 수 있을 것 같다.
1. 나의 원동력
2. 학문 및 공부 분야
3. 일상적 고민
4. 과몰입
일단, 첫 번째, 추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미래에 대한 상상은 나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누구나 힘들고 지칠 때 앞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를 생각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얻고는 한다.
나 또한 그렇다.
아니, 사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까지 내가 하는 거의 모든 행동들의 작동 원리는 아직은 제대로 일어나지 않은, 그래서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만 존재하는 것들에 기인한다.
물론 밥 먹기, 자기 전 이 닦기 등과 같은 평생 매일 반복된 아주 일상적인 루틴은 별 생각 없이 이뤄진다.
그러나 그런 행동들로부터 조금만 벗어나는 순간 '어쩌면, 만약에, 그리고 혹시나' 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단, 그 영역의 핵과 각각의 행동 간의 거리는 모두 다르다. '어쩌면, 만약에, 그리고 혹시나' 가 적용되는 정도는 모두 다르다는 뜻이다.)
구글 캘린더에 앞으로의 2주치에 해당하는 헬스장 갈 날들과 얼굴에 팩을 할 날들에 대한 계획을 짠다고 가정해보자.
(참고로 이는 내 N 성향과 J 성향의 조합에 의해 수행된다.)
헬스장 갈 날들의 경우, 어쩌면 그 다음날 근육통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근육통으로부터 언제 회복할지를 생각해서 회복 후의 날들로 정한다.
그리고 팩을 할 날들의 경우 그날의 외출할 가능성, 운동하러 갈 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계획한다.
그런데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좀 어이없다.
근육통이 올지 안 올지도 모르고, 온다면 회복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외출 또한 하게 될 수도, 아니면 취소될 수도 있는 건데,
그 모든 걸 감안하고 계산해서 계획을 짠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래도 난 이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하고, 또 재밌다.
계획도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저렇게 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를 상상하면서 짜야 즐겁다.
아니, 그냥 상상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이런 지극히 일상적인 것 말고 더 큰 의미를 가진 일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어쩌면, 만약에, 그리고 혹시나' 가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커진다.
내가 매일 7~8시간씩 공부를 하고, 요즘엔 하루에 9~10시간으로 공부 시간과 양을 더 늘리고, 그러면서도 이 과정을 그다지 고통받지 않고 해 나가고 있는 것의 원인은 나의 상상에서 비롯된다.
혼자 집에서 하루 종일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면 사실 문득 힘들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석사까지 졸업해놓고 취업해서 돈은 안 벌고 또 다른 석사 진학하겠다고 이러고 있는 거지.
아니지, 부귀영화는 개뿔, 우리나라 현실을 봤을 때 생물 쪽은 진짜 다들 비추하는 분얀데.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 때 나의 생각 회로는 1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나의 시선을 상상의 영역으로 돌려버린다.
생물정보학을 전공해서 암이나 난치병 등의 치료와 같은 가치 있는 일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하는 나의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단순히 이 한 장면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해서 어느 대학원의 어느 랩실에 들어갈지, 다시 대학원생이 되면 나의 데일리 루틴은 어떻게 될지, 대학원 생활 중 스트레스는 어떤 취미 활동으로 해소할지, 석사 과정 끝나면 취업할지 진학학지, 진학한다면 어느 나라에서 박사 과정 할지, 미국에서 한다면 그곳에서의 박사 라이프는 어떨지, 독일이라면 어떨지, 박사 졸업 후엔 기업에 갈지 학교에 남아서 연구와 교육에 더 집중할지 등 나의 상상이 닿을 수 있는 모든 스토리는 다 그려본다. 그 하나 하나에 대한 세부 내용을 블로그에 모두 담기에는 글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길어질 것이기 때문에 따로 적진 않을 것이다.)
그럼 다시금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지금 내 눈 앞의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내가 그리는 아주 이상적인 미래 나의 모습은 그저 '이상' 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그 이상향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두 번째, 이건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인간의 맨눈으론 볼 수 없는 매우 작거나 매우 큰 존재들을 다루는 학문 분야에 더 큰 흥미를 느낀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늘 우주, 세포, 바이러스, 철학 등과 같이 직접적으로 우리 눈에 바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분야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좋아했다.
나에게 회계, 법률, 사회학 등과 같은 분야는 선이나 평면 같지만, 바로 위에서 언급한 우주, 세포, 바이러스, 철학 등과 같은 분야는 큰 입체 도형 같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선이나 평면은 납작한 반면, 입체 도형은 말 그대로 입체적이다.
납작한 선이나 평면에 비해 입체 도형의 경우 그것이 가진 공간을 내가 상상의 영역으로 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극도로 작거나 극도로 커다란 것들은 우리 눈으로 항상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것들을 학문으로 공부했을 때 내가 상상했던 것들과 지금까지 실제인 것으로 밝혀진 것들을 비교, 대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의 머릿속 그림을 업데이트해 가며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나의 지적 호기심을 더 많이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나름 열심히 설명했는데, 다들 이해됐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생물학과 화학을 공부하고 있는 요즘이 이전에 경영 공부를 할 때보다 더 즐겁다.
세 번째, 나는 일상에서 철학적이거나 공상적인 사유를 자주 한다.
(나의 이전 포스팅들을 본 사람이라면 대충 알 것이다.)
인간은 어떤 동물인가, 인간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어떠한 사회 현상이 일어나는 데는 인간의 어떤 본능과 본질이 작용한 것일까 등 같이 철학과 관련된 생각들부터,
과연 다음 생이란 건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존재한다면 다음 생에 우리는 어쩌면 지금보다 과거의 시점에 태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다른 세계에서 태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다른 차원이지 않을까, 그럼 우리가 길에서 스치는 사람들 중 몇몇은 어쩌면 나와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내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이 상황들 모두가 어쩌면 진짜 나의 길고 긴 꿈속이 아닐까 등과 같은 아주 공상적인 생각들까지.
이런 주제를 들으면 극 S 성향의 우리 엄마처럼 머리를 부여잡으며 어질어질해 하거나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데 있어서 '왜' 라는 질문은 통하지 않는다.
정말로 별 다른 이유 없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보면 갑자기 시작되어 순식간에 상상의 가지들이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난 그 과정을 즐긴다.
마지막으로, 나는 상당한 과몰입러다.
내 삶의 가장 오랜 과몰입 대상은 바로 해리포터다.
초등학생 때부터 25살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해리포터 과몰입 상태를 유지 중이다.
초등학생 때는 학급 친구들 몇 명과 해리포터 모임을 만들어 쉬는 시간에 영화 장면 몇 개를 직접 따라해보기도 하고 마루더즈 맵을 직접 만들어서 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유치하지만, 그 당시엔 정말 진지했다.)
요즘은 내가 속해 있는 기숙사인 레번클로 관련 앰비언스를 종종 들으면서 공부하고,
해리포터 세계관에서도 마법사들이 그들의 실체를 밝히지 않은 채 머글들과 함께 지내듯이 우리 세계에도 그런 마법사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 설레어 하기도 한다.
또 미래에 내가 꾸밀 수 있는 방이나 집이 생기면 꼭 레번클로 테마로 꾸미고 싶다는 생각도 아주 강하게 있다.
마블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고 적어도 2주 동안은 그 영화에서 도무지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그럴 때 혼자 길을 걸으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에 내가 남들은 모르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초능력을 숨기고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어떤 초능력이면 좋을까.
드라마도 나의 과몰입을 피해가기란 어렵다.
물론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드라마가 종영될 때 이제 더 이상 등장 인물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매우 아쉽지만 그들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라는 나를 관찰할 수 있다.
내 머릿속에서 쉼 없이, 그리고 아주 순간적으로 일어나서 매우 추상적으로 그려지는 날것의 상상에 대한 특징을 글로 표현하려 하다보니 글이 꽤 길어졌다.
게다가 으레 뚜렷한 형체 없이 떠다니는 그것들을 글로 묘사하기란 상당히 쉽지 않았다.
장장 3시간 동안 고민해서 적은 묘사가 그것들을 왜곡 없이 잘 전달했길 바란다.
- 25.663살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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