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일기인데 너무 무거운 주제로 시작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어젯밤 잠 들기 전, 유튜브로 카뮈와 부조리 관련 영상을 봤다.
사실 며칠 전부터 나의 다음에 볼 동영상 목록에 저장되어 있던 영상인데, 어제 해야 할 일들을 좀 일찍 끝내서 밀린 영상들을 보기로 했다.
내용은 카뮈가 말한 부조리의 본질, 삶의 무의미, 그리고 그를 대하는 태도 등에 대한 것이었다.
굉장히 어둡고 무거운 주제인 것처럼 들리지만, 우리 모두, 정말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이해한 것들을 바탕으로 얘기해 보자면,
부조리감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이성적 사고와 논리 등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할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다.
최근 전 세계인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 모로코 대지진과 리비아 대홍수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이 자연재해로 인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실종되었다.
특히 가족 중 혼자 살아남아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도대체 왜 그들에게 이런 비참한 일이 생기는가.
또 다른 예로, 우리 주변에 정말 착하고 타인에게 항상 베푸는 어떤 사람이 갑자기 너무나도 큰 병에 걸렸다고 했을 때,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아니 어떻게 이런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작년 이태원 압사 사고 때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왜 저들에게 저런 허무하면서도 끔찍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 이 감정이 바로 부조리감이고, 삶은 원래 이렇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무의미한 것들 투성이이다.
카뮈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삶이 이토록 무의미한 것이라면 우리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는 자살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다.
카뮈는 이 질문을 통해 자살은 오로지 현실을 도피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
죽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 질문은 내가 올해 초 네덜란드에서 석사 논문을 쓰면서 나에게 수없이 던진 질문이다.
원래도 학사 때부터 전공으로 해오고 있던 경영이란 학문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논문과 인턴, 그리고 학교 수업을 병행하면서 지쳐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이제 졸업하고 나면 이 길로 취업을 해서 이 일로 평생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할 만큼 내가 이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내가 가치를 두는 분야로 트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석사까지 해버린 거 그냥 참고 하다보면 언젠간 괜찮아지는 날이 올까.
생각이 많았다.
안 그래도 할 일 많아 죽겠는데 생각과 고민까지 넘쳐나버리니 번아웃이 정말 세게 와서 일주일 동안 잘 씻지도 않고 밥도 거의 먹지 않고 잠만 자고 우울해하고를 몇 번 반복하곤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내가 더 가치를 두고,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것이 지금 내가 생물정보학 석사 입학을 목표로 다시 공부하고 있는 이유이다.
이것이 내가 네덜란드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포지션 오퍼를 거절하고 귀국한 이유이다.
사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바로 하면 좋은 점들이 많았을 것이다.
요즘 워낙 데이터 쪽으로 산업의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에 일자리 걱정도 크지 않을 뿐더러
네덜란드였기 때문에 돈도 훨씬 많이 벌 수 있었을 것이다.
데이터가 아닌 직무로 네덜란드 기업에 취업한 같은 학교 한국인 친구는 초봉이 억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데이터 직무는 훨씬 높다는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돈과 가치 있는 일, 둘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난 가치 있는 일을 고를 것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번다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이 수십년 지속된다면,
난 못 견딜 것 같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서 삶을 돌이켜 봤을 때 내가 해온 일이 무의미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후회스러운 인생이라고 느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죽을 때 물질적인 것들은 들고 갈 수 없기에
나의 가치에 부합하는, 그래서 나의 내면을 꽉 채우는 그런 경험들을 한껏 가져갈 수 있으면 참 행복할 것 같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덜란드 생활을 접고 온 게 후회가 될 때가 가끔 있긴 하다.
나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 솔깃한 오퍼를 거절한 것이 과연 잘한 선택이었을까 다시 생각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되새기곤 한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내가 더 가치를 두고,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 25.622살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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