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생각

4)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Hazel Y. 2023. 9. 20. 11:34

불안은 내 25년 인생의 거의 절반을 함께 해온 꽤 오래 된 동반자이다.

 

나는 이 동반자 녀석과 애증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애 15%, 증 85% 정도로 거의 증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정말 하루 빨리 떨쳐내 버리고 싶지만,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내가 기억하는 첫 불안 증상은 중학생 때였다.

 

몇 학년이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암튼 중학생 때였던 건 확실하다.

 

어느 날 집에서 가족과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숨이 잘 안 쉬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들이마셔도 깊게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너무 갑갑한 느낌이었다.

 

왜 그런 증상이 나타났는지는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중학생 때라 스트레스 받는 거라곤 학교 시험이랑 학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뭐, 당시의 나는 학교, 학원, 공부가 인생의 거의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긴 했겠다.

 

밥을 먹다 숨이 잘 안 쉬어진다고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엄마는 간에 열이 차서 그런 거라며 아이스팩을 오른쪽 가슴 아래에 대고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속는 셈 치고 한 번 그렇게 해봤더니 2~3분 뒤 호흡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아서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도 중고등학생 때 종종 그런 경험이 이어져 왔고, 그 때마다 냉동실에서 아이스팩을 꺼내 민간요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불안 증상은 성인이 되고 더 심해졌다.

 

솔직히 대학교 1학년 때는 대학교 적응하고 열심히 놀러다니느라 그런 증상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 정신을 차리고 내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불안 또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것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선 내 대입 과정도 짧게 얘기해야 한다.

 

대학을 경영학과로 입학했지만, 사실 난 경영학과에서 뭘 배우는지 대충이라도 잘 알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수많은 장래희망을 가져왔지만, 단 한 번도 회사 CEO나 마케팅, 회계 등의 경영 사무 직무에 대한 꿈을 꿔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경영학과에 지원하고 입학한 이유는 단 하나.

 

엄마가 가라고 해서였다.

 

그 이유는 이해가 간다.

 

난 문과였고, 문과 탑은 경영학과이며, 경영학과는 졸업하고 취업도 다른 문과 학과들에 비해 잘 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무사인 아빠처럼 나도 회계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고, 아무래도 경영학과가 회계사라는 직업과 제일 가깝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 때 당시 수시 6장 쓴 곳에서 모두 떨어지고 난 후였고, 재수는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 말씀을 들으면 일단 현역으로 대학은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해서 보니 경영학은 나에게 아무 관심도 흥미도 없는 분야였다.

 

대학교 1학년 때는 그럭저럭 고등학교 다니듯이, 또 다시 주입식 교육을 받듯이 다녔다.

 

그냥 수업보다는 수업 끝나고 당시 제일 친했던 친구 혹은 당시 남자친구랑 놀 생각 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2학년이 되자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경영에서는 내가 딱히 하고 싶은 분야가 없는데.

나 이거 공부해서 뭐 먹고 살지.

 

그러면서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주 바뀌던 꿈에서 거의 흔들리지 않던 하나의 꿈을 생각했다.

 

의사.

 

그렇다. 나는 줄곧 의사가 되고 싶었다.

의사가 되어서 의료 취약 지역에서 약자들을 대상으로 의료 봉사를 하면서 사는 게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이상처럼 그리던 내 꿈이었다.

 

그런데 외고에 입학하고 내가 고2 올라가던 해에 외고 이과반이 금지가 되고 폐지가 되면서 자연스레 의사의 꿈을 접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대학교 2학년 1학기에 중도휴학을 하고 독학 재수 학원에 들어갔다.

 

이과로 전향해 의대를 목표로 수능을 다시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가 발생해버렸다.

 

잠시 잊고 살았던 내 동반자 녀석이 다시 나타나버린 것이다.

 

그것도 아주 본격적으로.

 

왜 하필 지금,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생각해보면 말이 되기는 한다.

 

일단 수능 공부 자체에 대해 나도 모르는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이다.

 

고3 때 나는 잠을 극한으로 줄여가면서 수능 공부를 했다.

 

다음 날 학교 수업이 있는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하루에 3시간씩만 자고,

다음 날 수업 없이 자습만 있는 금요일와 토요일 밤엔 잠을 아예 자지 않았다.

 

그걸 거의 1년을 했다.

 

그래서 나는 잘 못 느꼈지만, 아마 그 때 내 몸은 수능 공부 그 자체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또 재수를 해서 의대를 들어가는 것만이 내 미래를 위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준비하는 수능을 또 망치면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내 앞 길은 이제 완전 막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영은 나와 너무 안 맞았고, 내가 더 관심 있는 학과로 복수전공이나 전과를 할 용기는 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고가 참 유연하지 못 했던 것 같다.

 

무튼 이런 복합적인 요인으로 불안 증상은 미친듯이 타올랐다.

 

학원만 들어가면 숨이 안 쉬어지기 시작해서 몇 시간이고 지속되었다.

 

처음엔 자습실 공기가 안 좋아서 그런가 싶어서 창가 자리로 바꿨는데도 오히려 증상은 악화만 되어갔다.

 

매일마다 기본적인 숨 쉬기조차 잘 안 되니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세 달을 버티다가 결국엔 학원을 그만뒀다.

 

더 이상 수능 공부를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복학을 했고, 난 내 전공이 너무 싫어서 타학과인 국제학부 전공 수업들을 미친듯이 들었다.

 

영어로 수업 듣는 것은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수많은 교환학생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의 영향으로 나도 영국과 독일로 교환학생을 1년 넘게 가게 되었다.

 

복학한 후부터 교환학생이 끝나기까지도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증상은 간혹 있었지만 그리 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언젠간 경영학과를 졸업해야 한다는 현실에는 눈을 감아버린 도피성 타전공 수업 수강과 교환학생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더 큰 스트레스와 불안이 덮쳐올 것을 그 땐 알지 못 했다.

 

교환학생 때까지 정말 진하게 놀고 귀국하고 나니 이제서야 현실이 보였다.

 

그것도 아주 또렷하게.

 

경영학과를 졸업해야 했고, 그 동안 너무 오래 도피를 해버린 탓에 채워야 할 학점은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었다.

 

빨리 끝내버리자는 생각에 매 학기 신청 가능 최대 학점을 채워서 7과목씩 수업을 들었다.

 

내 성격 상 하고 싶은 것이든 하기 싫은 것이든 일단 시작하면 제대로 해서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잠을 줄여가며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부담 때문이었을까 재수 학원에서 경험했던 불안보다 더 높은 수위의 불안이 날 순식간에 집어 삼켰다.

 

2020년 5월의 어느 날.

 

귀국하고 복학 후 약 2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2개월 내내 제대로 된 편한 호흡을 해보지 못 했다.)

 

재수 학원에서 느꼈던 것 그 이상 심해질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날도 하루종일 숨이 잘 안 쉬어졌던 건 당연했다.

하루 공부를 다 끝내고 12시쯤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잠에 들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잠에 들면 이대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죽을 것 같았다.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엄마가 자는 방으로 가 엄마 옆에 누웠다.

그럼 좀 나아질 줄 알았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더 심해지기만 했다.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일어나서 앉았다.

곧 죽을 것 같았다.

당장 심장이 멈추고 숨이 끊길 것 같았다.

옷장에 비친 내 그림자가 곧 쓰러져버릴 것 같았다.

너무 너무 공포스러웠다.

 

엄마한테 응급실에 가자고 했다.

 

엄마는 지금은 잘 때니까 일단 잠을 청해보라고 하셨다.

 

곧이어 몸이 막 떨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엄마는 내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나를 차에 태우셨다.

 

나는 가까운 응급실 아무 곳이나 가서 안정제를 맞고 싶었지만, 엄마는 이왕 갈 거 대학병원 응급실을 가자며 차로 30~35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운전하셨다.

 

그 동안 내 증상은 심해졌다 나아졌다를 몇 번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병원에 다 와가니 조금 진정이 되어서 엄마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셨고 나는 차에서 잠이 들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게 되었고, 다행히 공황 장애는 아니지만 갑작스런 불안 증세가 종종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만 복용하는 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갑작스럽게 나타나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하루 종일 나의 일상 생활을 괴롭히는 불안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내 삶에서 불안이 차지해온 부분들을 생각해보면 앞으로도 난 정말이지 당장 손절해버리고 싶은 이 친구를 어쩔 수 없이 평생 마주해야 할 것 같다.

 

솔직히 이건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도 일상 생활에 어느 정도 지장이 생겨버리니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너무 지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수술로 한 번에 떼어낼 수 있는 혹 같은 것도 아니고.

 

그러니 불안도 나의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련다.

 

그게 최선인 듯하니까.

 

- 25.630살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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