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읽어 보면 좋은 관련 포스팅]
드디어 내 성격에 대한 고찰 시리즈의 마지막 포스팅이다.
내가 속한 MBTI 성격 유형의 마지막 알파벳은 J이다.
흔히들 J는 계획형, P는 즉흥형이라고 알고 있어서 J인 사람들은 계획을 철저하게 수립하고 그걸 지키려고 엄청 노력하는 반면, P인 사람들은 즉흥적이고 계획 없이 막 산다는 일종의 흑백 논리와 같은 고정관념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 같다.
물론 이는 틀린 개념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J는 판단형, 그리고 P는 인식형이다.
그래서 계획과 무계획의 차이라기보다는 판단과 인식의 차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구분이다.
즉, J인 사람들은 무엇이든 판단을 먼저 내리고 그것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을 선호하고, P인 사람들은 일단 상황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는 MBTI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는 그저 내 주변인들을 관찰한 결과이다.)
예를 들어, 외출 일정이 있을 때 판단형인 사람들은 외출 전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비가 올 가능성이 있다면 미리 우산을 챙겨야겠다는 판단을 내린다. 반면, 인식형인 사람들은 일단은 외출을 해 보고, 나중에 비가 오면 편의점에서 우산을 하나 사든지 친구 우산을 빌리든지 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어차피 우산이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일기 예보를 보지 않고 우산을 챙겨 나가지 않을 가능성이 판단형인 사람들에 비해 높다.
(이 또한 내가 관찰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개인 혹은 집단에서는 유사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판단 혹은 인식 기능이 계획을 세우고 지킴에 있어서 다르게 작용하는 것은 워낙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나는 이 두 유형이 발현되는 다른 영역엔 또 뭐가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떠오른 것이 바로 면접, 토론, 질의응답과 같은 임기응변의 상황들이다.
인식형보다 판단형의 비중이 더 높은 나는 이러한 상황들을 마주했을 때 꽤나 당황하고 뭐라 해야 할지 잘 몰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고3 때 면접이 있는 수시 전형들이 나에겐 너무나도 부담스러웠고, 그 어떤 압박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고 차분히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친구들이 매우 부러웠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 입학해서도 토론을 해야 하거나 준비한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을 해야 하는 그 시간들이 늘 나에겐 너무나 힘들었다.
유학을 하면서는 수업 중 이해가 잘 되지 않거나 교수님과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들에 대해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친구들을 보고,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당당히 질문을 한다는 점보다 질문할 거리들이 바로 바로 생겨난다는 점에서 그들이 더 신기했다.
나는 항상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만의 생각이 정리되어야 비로소 궁금한 점들이나 코멘트 달 내용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그 자리에서 바로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면, 상당한 긴장 속에서 어렵사리 꺼내보는 나의 코멘트는 질적으로 꽤 떨어지는 편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러한 나의 특징 때문에 인턴 생활 당시 팀 미팅에서 어떠한 안건에 대해 갑작스럽게 브레인스토밍을 해야 했을 때마다 나의 아이디어들은 너무 보잘 것 없었던 것 같다.
관련 정보들을 바탕으로 어떤 내용을 말할 것인지, 그 내용은 해당 안건에 과연 적절한 것인지, 가치를 더할 수 있는 것인지, 누군가 그 내용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을 내세우면 어떤 다른 아이디어를 제안할 것인지 등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형의 특성을 조금만 더 확장시켜 생각해 보면, 불안과 어느 정도 연결이 되는 것 같다.
판단형들이 플랜 A부터 Z까지 세우기도 하는 행동의 기저에는 여러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불안을 최대한 해소하고자 예측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상황들을 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극 J들 중에선 자신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계획이 틀어졌을 때 상당히 당황하고 불안해하고 견디기 어려워하는 이들도 종종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점 때문에 판단형 위주인 나는 인식형들을 부러워할 때가 가끔 있다.
인생은 내가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극 J가 아니어서인지 나의 계획과 현 상황이 맞지 않을 때 아주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은 아니다.
대신 지속적으로 계획을 수정해 나간다.
그렇지만 계획 수정의 결과물도 어찌됐든 판단형인 나의 입장에서 나름 괜찮아 보이는 계획이어야 하기 때문에 보통 어떤 상황이 틀어졌을 때 계획을 다시 세우는 일을 거의 하루에 걸쳐서 하는 편이다.
기존에 있던 계획을 대충 손만 보는 정도가 아니라 관련 자료와 정보를 다시 조사하고 수집하고 그에 따라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계획을 새롭게 수립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존의 계획을 리셋시키고 처음부터 다시 짜는 것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가끔은 시간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새로 계획 짜 봤자 또 조금만 있으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럼 또 금 같은 하루를 계획 짜는 데만 써 버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계획도 안 세우거나 유동성 있게 대충의 틀만 세워 버리면 또 불안해서 머릿속으로는 자동으로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는 나 자신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엔 다시 계획 짜는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판단형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것의 반복이다.
그렇다면 판단형 성향이 강한 사람들의 장점은 없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러한 판단형 혹은 불안이 높은 뇌를 가진 이들의 장점은 바로 철저한 준비성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불안하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미리 찾아보고, 정보가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거나 예측을 해 보는 등의 판단 과정을 거칠 수 있는 것이고, 사전에 내린 판단이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토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확실하게 나름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나는 임기응변의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나의 단점만을 계속해서 들추기보단 뭐든지 철저히 준비할 수 있는 나의 장점에 더 집중하고자 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 각자에게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채워나가면 되는 것이니까.
MBTI 성격 유형을 활용해 포스팅을 해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주 잘.
물론 나는 '나' 라는 사람을 365일 24시간 내내 마주하는 유일한 존재인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태껏 내가 인식해 왔던 나의 모습은 그저 피상적인 껍데기에 불과했음을 이 시리즈를 쓰며 알게 되었다.
실제로 나의 어떤 특성에 대해 누군가 '그럼 너는 왜 그런 거야?' 라고 물으면 '몰라. 그냥 나는 원래 이래.' 라고만 답할 줄 알았을 뿐 나 자신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을 포함해 총 네 편의 성격 관련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이해하고 나니 진정으로 나를 위한 삶이 무엇인지 한층 더 뚜렷해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단해진 나를 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나를 억지로 바꾸려 하는 것도 확연히 줄었고, '나' 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된 것이다.
- 25.762살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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