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가슴 속에 후회를 품고 살아간다.
그 규모와 수엔 차이가 있을지라도 후회가 전혀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기에 과거의 어느 한 순간에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며 곱씹을 때가 다들 한 번쯤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도 수많은 크고 작은 후회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주로 현실에 지칠 때 그 후회들을 떠올리며 상상과 이상의 세계로 넘어가보곤 한다.
물론 하루종일 그것들에 매몰되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잡을 수 없는 이상만 추구하는 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의자나 소파에 가만히 등을 기대어 그런 도피를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큰 후회를 하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 집에 있는 텔레비전으로 '신나는 날 즐거운 날' 과 같은 초등학생 동요 대회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도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3학년 때였나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서 모든 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노래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수업은 해당 시간대에 학원에 있는 아이들은 아무나 참여할 수 있었다.)
성악 전공인 원장님께서 그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한 명씩 앉은대로 돌아가면서 한 소절씩 부르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왔다.
그래서 앞 순서 아이가 부른 부분에 이어 한 소절을 불렀다.
그랬더니 원장님께서 갑자기 피아노 반주를 멈추시더니 나를 앞으로 불러내셨다.
나를 왜 부르셨는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너무나 긴장이 되었다.
쭈뼛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갔더니 원장님께서 다른 아이들에게 '얘들아, 노래는 이렇게 부르는 거야.' 라고 하시며 다시 처음부터 반주를 할 테니 나보고 곡 전체를 불러보라고 하셨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반주를 하시는 원장님 옆에서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렀다.
그 수업이 끝나고 원장님께서는 내 부모님께 연락을 하셔서 나에게 성악을 배우게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물으셨고, 정확한 성악 수업 등록 과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암튼 그날 이후 나는 학원에서 성악도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성악을 배운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첫 콩쿨에 나가게 되었고, 초등 성악부 전체 대상을 받았다.
그때 조금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노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노래에 어느 정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성악을 배웠고, 뮤지컬과 같은 활동들에도 몇 번 참여했다.
아주 어렸지만 그때의 나는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정말 좋았다.
내 차례가 거의 다 되어 조명이 켜진 무대로 나가기 직전엔 온몸이 조절할 수 없이 떨릴 때도 있었는데, 그런 떨림과 긴장도 너무 좋았다.
사람들의 관심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행복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이 다가오자 엄마는 나에게 노래를 계속 하고 싶냐고 물으셨다.
무슨 이유에서인진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노래 대신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아마 당시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과 높은 석차를 받는 것이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피아노도 성악도 모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노래하길 정말 좋아하는 나였기 때문에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학생 때부터는 오디션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계속 커져서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마음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당시 나에겐 꽤나 큰 걸림돌이 있었다.
내가 지방에 거주한다는 것이었다.
지방에는 오디션의 기회가 많이 없었고, 그래서 부모님의 지원이 어느 정도는 필요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내가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걸 무척 싫어하셨다.
가수 얘기만 꺼내도 매우 강하게 반대하셨다.
실제로 케이팝스타 지방 오디션에 가도 되냐고 했을 때도 부모님과 아주 크게 싸우고 결국엔 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중학교 졸업 기념으로 앨범을 하나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는 레슨부터 녹음실까지 모두 지원해 주시긴 했다. 그냥 노래 부르는 것을 업으로 삼는 걸 싫어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중학생 때부터 나는 유튜브에 노래 커버 영상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이고 싶지 않아서 부모님께서 외출을 하셨을 때에만 나는 노래를 연습하고 녹음했다.
고등학생이 되었고, 내신과 수능에만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랐을텐데 중학생 때부터 이어져 온 가수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갑자기 실용음악학원 오디션반에 들어가서 이제는 정말로 오디션을 제대로 봐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부모님을 졸라 학원을 등록했지만, 학교 친구들이 공부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도 가고 싶었던 나는 결국 몇 달을 못 가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그래도 학창 시절 동안 팝송경연대회, 학예회 단독 무대, 졸업식 축하 무대 등 교내에서 주어지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들엔 모두 참여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학교 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가요제에 매번 참가해 상금도 타곤 했다.
여전히 나는 살면서 경험해 본 여러 가지 활동들 중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한 시간이 10분처럼 느껴지고, 이제 충분히 불렀으니 공부를 다시 해볼까, 하면 벌써 3 - 4시간은 그냥 흘러가 있다.
그렇게 내가 온전히 나의 모든 것들을 쏟아부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는 활동들엔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노래 말곤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 정도로 노래 부르는 것이 좋고, 노래는 나의 거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창구이다.
노래를 하고 있을 땐 주변을 잘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종종 노래와 한 몸이 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만약 노래가 없었더라면, 나의 세상은 한 장의 검은 색종이처럼 단조롭고 칙칙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중학생 때 오디션에 나가거나 제대로 실용음악을 배웠더라면 어땠을까, 혹은 더 과거로 가 초등학교를 마치면서 엄마가 나에게 했던 질문에 노래를 계속 하고 싶다고 답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 보곤 한다.
유명한 가수나 성악가가 되진 못하더라도 항상 진심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삶이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론 노래를 취미로 삼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기도 한다.
언젠가 좋아하는 일도 업이 되는 순간 하기 싫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만약 그때 나의 커리어를 노래로 굳혔더라면, 나는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노래를 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 25.767살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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