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생 때 영재원을 다녔어서 당시 나의 엄마는 그곳 학부모들과 주로 만났다.
대충 느낌이 오겠지만, 그때 영재원 학부모들은 일반적으로 자녀 교육과 입시 및 진로에 관심이 정말 많았다.
(요즘은 어떨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비슷하거나 더 할 것 같다.)
그래도 엄마는 다른 영재원 학부모들보다는 덜 했다.
다른 친구들은 초등 저중학년 때부터 학원 뺑뺑이를 돌고 특히 수학 학원에서 가장 높은 레벨의 반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나는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야 수학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학 학원을 등록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았다.
하루는 영재원 수업 시간에 수학 문제를 풀다가 거듭제곱 관련 문제가 나왔는데, 초등학교 5학년 아니면 6학년이었던 나는 그게 뭔지 몰랐다.
처음 듣는 용어였다.
그래서 선생님께 거듭제곱이 뭐냐고 여쭤봤다.
그랬더니 옆에서 문제를 풀던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그것도 몰라? 학원에서 안 배웠어?'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나는 학원을 다니고 있지 않았고, 혼자서도 선행 학습을 안 했기 때문에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중2 교육과정에 나오는 거듭제곱을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걸 모르는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지금도 그 기억만큼은 마치 작년 일처럼 아주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영재원 수업이 다 끝나고 집 가는 엄마 차 안에서 나는 펑펑 울면서 엄마에게 학원을 등록해 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해서 수학 학원을 다니게 된 것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너무 많은 선행 학습을 시키고 싶지 않으셨어서 학원에서도 나는 한 학기 정도만 선행을 했었다.
중학생이 되었다.
엄마는 영재원 학부모들로부터 동네에서 가장 빡세다고 소문이 난 수학 학원을 통해 특목고반을 만들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셨다.
당시 특목고를 가는 것이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엄마도 솔깃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난 학원을 옮겨 영재원 친구들과 같은 수학 학원의 같은 반에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예비 중3이던 어느 날, 나를 포함한 모든 특목고반 학생들은 학교 생활기록부를 학원 원장 선생님께 제출해야 했다.
고등학교 입시 상담 때문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엄마와 나는 원장실로 들어갔다.
원장 선생님께서 내 성적이 전체적으로 애매해서 자사고에 지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대신 영어 성적은 괜찮아서 중3 1학기 영어 시험을 망치지만 않는다면 외고는 노려볼 만하겠다고 덧붙이셨다.
그렇게 해서 난 외고로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의 삶은 등교, 아침 자습, 오전 수업, 점심, 오후 수업, 보충 수업, 저녁, 야자, 하교의 끝없는 반복이었다.
물론 학생부에 몇 줄 더 적을 요량으로 교내 대회에도 참여하고 동아리 활동도 했지만, 대부분의 일상은 공부에서 시작해서 공부로 끝나곤 했다.
(그런데 이건 일반고 학생들도 크게 다를 바 없었을 것 같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학교 선생님들께서는 성공적으로 대입을 한 선배 언니들의 이야기를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려주셨는데, 여기서 '성공적인 대입' 이란 전공 상관 없이 좋은 대학교를 간 케이스를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특목고 특성 상 어느 전공에 몇 명을 보냈는지보단 어느 학교에 몇 명을 보냈는지에 대한 대입 결과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학교의 중요성만을 강조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당시 내 인생의 목표는 '서울 주요 10개 대학교 합격하기' 가 되었다.
(서울 10개 대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중앙대, 서강대, 한국외대, 이화여대, 한양대, 그리고 경희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전공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좋은 대학교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내가 수시 지원을 했던 곳들만 봐도 얼마나 전공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
(6곳이 모두 기억나진 않지만,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와 한국외대 독일어교육과에 지원했다. 도대체 이 두 전공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결국 수시 입시에 실패했다.
정시에서는 무조건 성공해야 했다.
재수는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정시는 부산대 경영학과, 부산대 경제학과, 그리고 홍익대 경영학과에 지원했다.
이렇게만 보면 마치 내가 경영학과에 지원하고 싶었던 것 같을 테지만, 사실 엄마의 추천으로 해당 전공에 지원한 것이다.
나는 경영학과가 무엇을 배우는 곳인지 조차도 몰랐다.
당연히 내 적성과 맞는 분야인지에 대한 고민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간 대학교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대학교에 대한 로망은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짜여진 커리큘럼에 의한 수업들 대신 내가 정말로 듣고 싶은 수업들만을 들으면서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영학과엔 내가 듣고 싶은 수업도, 내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도 딱히 없었다.
그러나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그럴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의 대학교 생활에 큰 변화는 주지 않았다.
물론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경영 공부를 포기하고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의학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건강 문제로 재수 시도에 실패하고 복수전공이나 전과를 할 용기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참고 기존의 전공으로 졸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계속 방황하면서 대학 생활을 보내다가 독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정말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아마 그게 내 인생 터닝 포인트의 미약한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다양한 것들을 느끼고 깨달았지만,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두 가지가 있었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에 꽤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신의 나이에 그렇게 많이 구속받지 않는 것 같았다.
정말 충격이었다.
당시의 나는 내 전공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무언갈 하는 데 있어서 내가 나이가 너무 많아져서 뒤처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뭐든 남들보다 빨리 해내고 싶어하는 조바심과 조급함에 거의 지배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쭉 한국에서만 자라 온 사람으로서 그것은 그저 나에게 신선함이라는 느낌만 주었지 그 이상의 직접적인 영향은 미치지 못했다.
교환학생이 끝나고 귀국한 나는 빨리 대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환학생 때 안고 온 한 가지의 목표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학원을 가는 것이었다.
(많은 유럽인 친구들이 석사는 기본으로 하는 것을 보고 이 글로벌 사회에서 그들과 경쟁하려면 나도 석사 학위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학사 때 그나마 제일 흥미롭게 공부했던 분야가 데이터 사이언스였기 때문에 대학원 전공은 Business Information Management, 우리말로 번역하면 경영정보관리학 혹은 경영정보학으로 선택했다.
결국엔 다시 전공에 대한 큰 고민 없이 경영 분야로 대학원을 진학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정점이 되는 터닝 포인트는 바로 이 네덜란드 대학원 생활 중에 맞이하게 되었다.
그곳은 교환학생 때 만났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레벨로 자신의 전공에 엄청난 흥미를 보이는 사람들 투성이었던 것이다.
다들 어느 한 분야씩은 미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분야가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에 가장 자신이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다른 친구들이 미쳐 있는 수준에 비하면 애교였다.
그런 나 자신을 보고 인생 전체를 돌이켜 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여태껏 나는 내 삶을 꽤 수동적이고 소극적이고 주변으로부터 너무 많이 흔들리며 살아왔던 것 같았다.
더 늦기 전에 나의 가치관과 삶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렇게 몇 주 몇 달 동안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교 다니고 인턴하면서 논문만 쓰기에도 너무 바쁜데 그런 고민까지 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말로 많이 힘들었다.
결국 용기를 가지기로 했다.
아니, 용기가 필요했다.
그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나만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선 용기가 필수였다.
용기, 그 하나면 되는 것을 이때까지 난 너무 돌아온 것 같았다.
앞으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려나가고 싶은 나만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에 더 많이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한 목표가 생기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물론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들도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그런 순간들도 이겨낼 힘이 있을 거라 믿기로 했다.
며칠 전 엄마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며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힌 엽서 한 장을 주셨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내가 그리는 삶의 퍼즐을 한 조각 한 조각 맞추면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 25.699살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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