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10시 30분부터 약 40분 간 아파트 단지 전체 정전이 되었다.
한국전력공사에서 점검을 나왔기 때문이었다.
전기가 모두 끊겼던 그 40분은 올해 들어서 가장 조용했던 40분이었던 것 같다.
집 안의 모든 전자제품들이 작동을 멈추었고, 와이파이가 꺼져 인터넷도 쓸 수 없었다.
물론 휴대폰 데이터를 써서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볼 수도 있었지만, 전기가 끊겼다는 이유로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인 40분을 허비하기 싫었다.
(사실 무엇보다 데이터를 아끼고 싶었다.)
그래서 노트북을 열어서 어제 필기해놓은 내용들을 복습했다.
요즘 MS 오피스 원노트에 필기하는데, 해당 앱은 인터넷 없이도 사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휴대폰으로는 열품타 앱을 켜서 공부 시간을 측정하는 데만 데이터를 사용했다.
눈으로 오늘 복습을 해야 하는 부분에 해당하는 필기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정전 시간 동안 집엔 나 혼자였다.
그래서 집 안에선 나의 숨소리 외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항상 들어서 인식조차 하지 않고 있던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어항 기포발생기 소리 모두 들리지 않았다.
공부할 때 항상 틀어놓는 모닥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창 밖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의 말소리, 그리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뿐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를 가득 둘러싼 평일 오전의 고요함이 어색하게 다가왔다.
전기가 없던 시절의 오전 공기는 이렇게나 잔잔했을까 싶었다.
10분 정도가 지나니 그토록 이상했던 고요함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잠이 쏟아졌다.
요즘 부쩍 잠이 부족한데 갑자기 주변도 조용해져서 그런 듯했다.
잠을 깨우기 위해 블랙티를 한 잔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엌으로 나갔다.
찬장에서 카라멜라이즈드 페어 티백을 하나 꺼내 들었다.
(내가 요즘 즐겨 마시는 차다.)
이제 물 끓여야지.
아 참, 전기 포트를 못 쓰는구나.
그럼 냄비로 끓여야겠다.
아.. 인덕션이네.
에이, 차는 나중에 마셔야겠다.
이제 우리는 전기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이 없는 것 같았다.
태어난 순간부터 전기는 항상 모든 곳에 있었기 때문에 전기가 나의 삶에 주는 편리함을 그닥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어디서든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오히려 어떤 이유에서 아주 잠시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불편하다고 짜증을 내곤 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과 물건들, 그리고 우리가 늘 누리는 것들이 그저 당연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당연한 것도 없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나와 그 누군가가 서로의 관계 유지를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배려하기 때문이고,
내가 내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어떤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내가 그 물건을 소유할 능력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우선적으로 그 물건을 만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고,
내가 일상처럼 누리는 서비스들 또한 그것들을 제공하기 위하여 밤낮 없이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 25.690살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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