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지난 글에 이어 나의 석사 졸업장 수령에 대한 두 번째 기록이다.
오전 6시에 얼리 체크인을 하고 샤워를 개운하게 마친 후 오전 8시였나 9시쯤에 잠이 들었다.
그리곤 장기 비행으로 인한 피로감 때문인지 정말 한없이 잔 것 같다.
오후 늦게 눈을 떴는데 배가 조금 고픈 듯도 해서 새벽에 공항을 나오기 전 그곳에 있는 마트에 들러서 미리 사 온 빵을 두 개 먹었다.
갓 구입한 빵이 아니어서 좀 눅눅해지긴 했지만, 약 두 달 만에 다시 먹어 본 초코 크로와상은 여전히 내 최애 빵이었다.
그리고 시금치와 페타 치즈가 들어간 뵈레크 (börek) 라는 터키 빵도 유학 시절 꽤 즐겨 먹었던 음식이었는데, 이 역시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더 꿀맛이었다.
음식을 먹고 나니 또 조금 피곤한 듯도 해서 안락한 침대 위에서 잠시 넷플릭스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잠들었다.
그렇게 도착 첫날은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평화로운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둘째 날은 조금 바빴다.
오전에 학교에서 졸업장 수령 예약이 잡혀 있었고, 그 후엔 바로 졸업장 공증과 아포스티유를 받으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모든 행정 업무가 끝나면 친구와 점심 약속도 되어 있었다.
오전 8시쯤에 방을 나서서 기차를 타고 로테르담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네덜란드 기차를 타니 기분이 이상했다.
인턴을 하는 6개월 동안 일주일에 2 - 3일씩 기차로 출퇴근을 했고, 심지어 당시 내가 살던 곳은 로테르담에, 회사는 스키폴에 있었기 때문에 스키폴에서 로테르담에 있는 학교로 향하는 기찻길에 펼쳐진 풍경은 내가 퇴근길에 질리도록 보던 풍경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분명 나는 학교에 졸업장을 받으러 가는 것인데, 기분은 마치 로테르담에 있던 나의 집으로 퇴근하는 듯했다.
그래도 차창 밖으로 오랜만에 네덜란드의 자연 경관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산이나 언덕 하나 없이 끝없이 뻗은 푸릇푸릇한 땅, 그 사이사이에 나 있는 물길들, 땅 위엔 열심히 풀을 뜯어 먹는 말들과 소들과 양들, 물 위엔 동동 떠 다니는 오리들과 거위들, 물길과 닿아 있는 풍차들, 그리고 자전거 타는 동네 주민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뤄 다시금 내 눈 앞에서 기찻길 주변의 네덜란드를 그려내고 있었다.
고작 1년밖에 살지 않았는데, 고향에 돌아온 것 마냥 반가운 풍경이었다.
곧이어 기차는 로테르담에 도착했다.
(스키폴에서 로테르담까지는 Intercity direct 기차로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로테르담 중앙역에서 학교까지는 트램을 타고 이동했다.
트램도 오랜만에 타서인지 트램이 정류장으로 접근할 때 느껴지는 땅의 진동, 트램 안의 좌석들, 다음 정류장 안내 멘트까지, 트램의 모든 것들이 나에겐 정겹게 다가왔다.
오전 시간이라 많은 학생들이 학교로 향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작년의 내가 떠오르기도 했고, 그 무리에 섞여 학교로 향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보니 다시 에라스무스 대학의 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학기 초여서 캠퍼스는 매우 북적였다.
그날 날씨도 너무 좋았어서 캠퍼스를 둘러싼 활기는 배가 되는 듯했다.
졸업장 수령 장소인 Erasmus Student Service Center 가 있는 건물로 들어섰다.
번호표를 뽑고 5분 정도 기다리니 내 차례가 왔다.
본인 확인을 하고 졸업장을 받았다.
나에게 졸업장을 주신 직원 분께서 웃으며 축하한다고 해 주셨다.
이제 정말로 나의 첫 번째 석사가 끝이 났음이 피부로 와 닿았다.
분명 석사 과정 중엔 과연 내가 이 프로그램을 다 끝낼 수 있을까, 올해 졸업할 수 있을까, 를 수없이 외쳤는데 어찌저찌 1년 만에 졸업을 해낸 것이었다.
비록 우수 졸업은 하지 못 했지만, 그래도 타국에서 외국어로 석사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쳤음이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그 후 나는 트램과 지하철을 타고 바로 DUO로 향했다.
(DUO는 Dienst Uitvoering Onderwijs의 약자로 네덜란드 교육부 산하에서 다양한 레벨과 분야의 교육을 받는 사람들에게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기관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혹시나 언젠가 한국에서 네덜란드 학위를 사용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미리 네덜란드에서 아포스티유를 받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법원에서 아포스티유를 받기 전에 먼저 DUO에서 공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내려서 구글 맵이 알려 주는대로 건물을 찾아갔는데, 출입구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10분 넘게 건물 주변만 맴돌다가 우연히 다시 지하철역 방향으로 가 보았는데, 이게 웬걸.
DUO 출입구가 지하철역에서 나와서 바로 왼쪽 방향에 있었는데, 구글 맵에 대한 강한 신뢰와 나의 직진 본능이 합쳐져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야말로 코앞에 있던 걸 못 봤던 것이다.
그렇게 겨우 건물로 들어가서 공증 업무를 보았고, DUO 직원 분께서 친절히 법원 가는 방향을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법원은 정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사실 법원은 DUO 건물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설명을 안 들었어도 못 찾으면 안 되는 거였다.)
나의 진땀을 뺐던 또 다른 상황은 법원에서 생겼는데, 졸업 문서 원본과 사본, 졸업 문서 부록 원본과 사본, 총 네 개의 문서에 공증을 받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전부 다 아포스티유를 받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법원 직원 분께서 한 문서 당 아포스티유 가격을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비싼데 정말로 전부 다 받을 거냐고 재차 물었다.
가격을 듣고 보니 네 개 문서 모두에 아포스티유를 받으면 쓰일지 안 쓰일지 모르는 곳에 생각보다 높은 금액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럼 원본에 받느냐, 사본에 받느냐인데.
잠시 직원 분께 다른 손님들 업무부터 먼저 보고 있으라고 하고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고민에 빠졌다.
폭풍 검색을 해 본 결과 사본에 받기로 결정했다.
원본에 받게 되면 나중에 그 아포스티유 받은 문서를 어딘가에 제출했다가 못 돌려 받을 수도 있고, 그럼 나의 졸업장 원본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졸업장 관련 모든 행정 업무를 마치고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바로 내가 한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잠 적게 자면서 풀타임 직장 업무와 풀타임 석사 과정을 동시에 했던 친구다.)
그 친구는 재택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잠시 미팅이 없는 시간에 나와 점심을 먹으러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2시간 정도밖에 시간이 없었지만, 점심으로 라멘을 먹고 후식으론 버블티를 마시며 오랜만에 나눈 서로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는 참 달콤했다.
그 친구와 헤어지고는 바로 호텔로 돌아왔다.
길지 않은 외출이긴 했지만 이동도 많았고 무엇보다 시차 때문에 피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다음 날을 위해서 조금 일찍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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