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생각

8) 해외 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

Hazel Y. 2023. 9. 24. 18:27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서의 삶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전혀 이상하거나 비난받을 것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과 경험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가진다.

 

그리고 이 호기심은 종종 그 대상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우리가 유럽에 대한 환상을 가지듯이 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아시아권과 관련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

 

교환학생 출국 전 나도 태어나서 처음 가 보는 유럽 국가들에 대해 엄청난 기대와 환상에 빠져 있었다.

 

모든 거리, 모든 골목, 모든 광장, 모든 공원들이 평화롭고 아름답고, 유럽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 곳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복지 강국에 걸맞게 사회 시스템이 아주 완벽하게 갖춰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영국에서 4개월, 독일에서 9개월, 네덜란드에서 1년을 살았다.

 

영국에서는 어학연수 학생으로서, 독일에서는 교환학생으로서, 네덜란드에서는 석사 유학생이자 인턴으로서 생활했다.

 

총 2년 1개월 동안 서유럽 국가 세 곳에서 여행자, 학생, 그리고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모두 경험해본 것이다.

 

그 중 현실과 가장 가까운 삶을 살았던 건 네덜란드에서 석사 유학을 할 때였다.

 

교환학생이 아니라 유학생 (일반 학생) 이었기 때문에 학점과 논문 모두 중요했고, 교내 및 교외 대외활동은 물론이고, 대형 글로벌 기업의 인턴십까지 참여했다.

 

그 모든 경험들을 바탕으로 내가 내린 해외 생활에 대한 내 생각의 결론은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다

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훨씬 나은 제도와 시스템도 많다.

 

특히 내가 거주했던 서유럽권 국가들 또한 북유럽권 국가들 못지 않게 복지 및 사회 정책이 꽤 잘 갖춰져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 정책들을 유지하기 위해 세율이 아주 높다.)

 

그로 인해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국가로부터 정당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많이 보장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문화적으로 과도한 경쟁이 없으며, 개인과 가정의 웰빙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곳도 사람 사는 동네이기 때문에 경쟁이 아예 없을 순 없다. 다만, 필요 이상의 '과도한' 경쟁을 보기 드물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훨씬 더 많은 잘 갖춰진 사회 기반 시스템들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은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것이고,

장점이 놓여 있는 손바닥을 뒤집으면 그게 단점이 된다

는 것이다.

 

워라밸을 예시로 들어보자.

 

네덜란드의 워라밸은 정말이지 최고다.

 

하루종일 일에만 파묻혀 살 필요가 전혀 없고, 왠만해서 칼퇴는 기본이며, 만약 기차 연착 등으로 인해 회사에 늦더라도 미팅에 늦은 게 아니면 큰 상관이 없다. 늦은 만큼 더 일하다 가면 되고, 그냥 주어진 기간 내에 본인이 맡은 업무만 잘 끝내면 된다.

가족 중심적인 문화가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회사 일보다 가족의 일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직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아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많은 유급 휴가 일수가 주어진다.

(내가 인턴십을 한 곳은 유급 휴가가 많은 직장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 인턴으로서 10일의 유급 휴가를 쓸 수 있었다.)

그래서 특히 여름 휴가 시즌에는 오피스가 많이 한산할 정도로 다들 편하게 오랜 기간 휴가를 떠난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로는 많은 직장들이 하이브리드로 바뀌어서 일주일에 보통 2~3일은 재택 근무를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이건 모두 근무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이다.

 

뒤집어서 해당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고객들 (또는 비즈니스 클라이언트들) 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미친 워라밸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일상처럼 제공되는 아주 아주 아주 빠른 서비스는 꿈도 꿀 수 없으며, 휴가철에 뭐 하나 문의해놓으면 그에 대한 답신을 받기까지 일주일은 기본으로 걸릴 수 있다.

그래서 유럽권 국가들에서 거주하면 인내와 기다림의 미학을 배울 수 있다.

(독일은 네덜란드보다 일처리 속도가 훨씬 느려서 - 내가 어떤 일을 요청해놨다는 걸 잊을 때가 되면 답신이 오기도 한다 - 그냥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세상엔 무조건적인 장점은 없고, 무조건적인 단점 또한 없다.

 

게다가 우리가 해외로 가면 그곳에서 우린 외국인이 된다.

 

이는 곧 우리는 그곳에서 모국어인 한국어를 하는 만큼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으며, 나와 아주 다르게 생긴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종종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종차별이 일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에이, 언어야 뭐, 가기 전에 완벽하게 마스터해서 가면 되고, 외적으로 다르게 생긴 거는 살다보면 금방 적응될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당신이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타고난 언어적 능력이 아주 탁월해서 어떤 외국어든 배우기만 하면 네이티브처럼 그 언어를 유창하게 사용할 수 있는 레벨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으며,

적응 능력 또한 엄청나서 태어나서 여태껏 살아온 환경과 전혀 다른 곳에서도 원래 그곳에서 태어나서 쭉 자란 사람처럼 현지인들과 아주 쉽게 어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감히 '극소수' 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해외 생활을 꿈꾸지 말라는 건 절대 아니다.

 

필자 본인도 언제든 기회와 여건만 된다면 다시 네덜란드나 독일에서 생활을 꾸려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수많은 장점들과 수많은 단점들을 저울질해본 결과, 개인적으로 나는 그곳에서의 삶이 꽤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모두 다 더했을 때 플러스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사는 것만큼 최고인 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심은

본인이 만약 해외에서의 삶을 꿈꾼다면, 꼭 현실적인 장점들과 단점들을 알아보고 그것들을 신중하게 저울질해본 후 결정해야 한다

는 것이다.

 

그저 한국 사회에 신물이 난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사회는 불행한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에서는 살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해외 이주을 결정하는 건 분명 그곳에서도 불행하고 후회하게 될 지름길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따라서 감정적인 것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해보고 선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 내가 내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내릴 모든 결정들이 현명하고 최선이길 바라고 응원한다.

 

- 25.641살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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