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의 평생 친구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Hazel Y. 2023. 12. 30. 12:50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내가 올해 들어서 독서 습관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 이후 처음으로 전자책으로 읽은 작품이다.

 

사실 종이책의 빳빳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과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드는 특유의 책 내음에 이끌려 여태껏 종이책을 고집해 오던 나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느끼는 종이책의 단점들도 물론 있었다.

 

대중교통 등을 타고 이동할 때 들고 다니면서 읽기가 약간 불편하다는 점, 그리고 책들을 계속해서 소장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방에 짐이 자꾸 늘어난다는 점.

 

그래서 늘 중고로 구입하고 한 번 읽고 나면 다시 중고로 팔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두 세 달 전쯤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갔다.

 

나는 머리가 반곱슬이기 때문에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매직펌을 해야 한다.

(안 그럼 내 머리카락을 나 스스로가 감당하지 쉽지 않아진다.)

 

그 날도 매직펌 시술을 하기로 되어 있었고 그러면 보통 3시간 정도는 한 자리에 앉아 가만히 있어야 한다.

 

물론 다른 이들은 그 시간 동안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과 수다를 떨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내 성향이 그걸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3시간 동안 혼자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어야 했는데, 최근 공부한다고 SNS도 공부 인증용 공스타 계정만 운영하고 친구 및 지인들과 팔로우되어 있는 본계정은 비활성화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딱히 휴대폰에 볼 것도 없었다.

 

그래서 미용실에서 머리 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충동적이라면 충동적으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전자책으로 구입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건 꽤 괜찮은 결정이었다.

 

내가 생각해 오던 종이책의 단점을 전자책이 모두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자책의 배경 색과 아이패드의 빛 세기만 잘 조절하면 눈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전자책의 장점에 매료되었고, 당분간은 아마 전자책만 구입해 읽지 않을까 싶다.

 

서론이 굉장히 길었는데, 아무튼.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분량이 꽤나 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이다.

 

찾아보니 하루키는 유명한 작가인 것 같지만, 불과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책은 시야에 들이지도 않던 나는 알 리가 없다.

 

온라인 서점 베스트 셀러 랭킹에 제법 오랫동안 자리해 있길래 호기심에 읽어 본 책이다.

 

나름 성공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심오하게 생각해 볼 거리를 아주 많이 던져 주는, 그런 책은 아니었지만, 가볍고 쉽고 빠르게 읽히면서도 중간 중간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도록 만들어 주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판타지적 요소도 가미되어 있어서 더 빠져들어서 읽었던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 두 개 있다.

 

"'사람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네, 이해하시겠습니까? 인간이란 숨결처럼 덧없는 존재고, 살면서 영위하는 나날도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네, 저는 옛날부터 이 말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만, 그 의미를 진심으로 이해한 건 죽어서 이런 몸이 되고 나서였습니다. 그래요, 우리 인간은 그저 숨결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죽어버린 제게는 이미 그림자조차 달려 있지 않습니다."

 

"걱정할 것 없어요.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면 됩니다. 그 움직임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많은 일이 잘 풀릴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소중한 분신이 당신의 복귀를 틀림없이 든든하게 지지해줄 겁니다."

 

그리고 책을 끝까지 읽은 나의 마음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번지고 있었다.

 

상류 계곡의 급류처럼 빠른 속도로 흘러갈 뿐인 단 한 번의 인생. 너무 어지럽게 생각하고 걱정하고 계산할 필요 없이 그저 나의 마음이 간절히 원하는 대로, 이끄는 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벽에 둘러싸인 도시에 가길 절실히 바란다면, 반대로 그 도시에서 이 세계로 돌아오길 마음 속 깊이 원한다면, 어느새 발길은 숨 쉬듯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그곳과 이곳에 닿아 있는 것처럼.


* 해당 글에 대한 무단 배포 및 복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