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포스팅 후 3주가 조금 지난 오늘이다.
여전히 나는 내 삶의 다음 챕터를 펼치기 위한 준비를 하며 바쁘고 알차게 지내고 있다.
블로그를 잠시 쉬고 공부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덕에 생화학을 수료하고, 유전학 또한 제때 시작할 수 있었고, 벌써 유전학은 절반 가까이 진도가 나갔다.
그러면서 지금 나는 무엇에 집중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았다.
오늘의 이 책 리뷰 포스팅을 시작으로 다시 매일 블로그에 글을 써 볼까도 생각했지만, 일단은 나의 두 번째 석사 입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예정인 내년 여름 즈음까지는 블로그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적어도 그때까지는 책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리뷰 포스팅만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오늘 이 포스팅이 그 시작이다.
『멜랑콜리아 Ⅰ-Ⅱ』는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욘 포세의 작품이다.
카뮈와 헤세처럼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은 일반적으로 작품을 통해 삶과 철학에 대한 그들만의 시선을 녹여낸다.
그리고 나는 그런 작품들을 읽는 걸 좋아한다.
흥미와 재미 위주의 이야기도 좋지만, 스토리의 세계가 나의 깊숙한 내면까지 와닿아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고 그것들이 나의 내면을 꽉 채우는 듯한 느낌이 꽤나 좋다.
한 달 넘게 걸려 완독한 『멜랑콜리아 Ⅰ-Ⅱ』도 나에게 그런 경험을 선사했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자극적인 요소들이 줄 지어져 있는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신경쇠약과 심각한 망상에 사로잡힌 라스 헤르테르비그와 치매를 앓는 그의 누나 올리네 헤르테르비그를 통해 단 한 겹의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인간 개인과 사회의 본모습 - 욕구, 무기력, 우울, 타인에 대한 비합리적인 평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인간 관계 등 - 을 매우 적나라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나의 마음에 들었다.
물론 포세 특유의 의식의 흐름 필법으로 인해 라스가 중심이 된 『멜랑콜리아 Ⅰ』을 읽을 때는 나도 함께 미쳐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올리네가 중심이 된 『멜랑콜리아 Ⅱ』를 읽을 때는 나도 마치 치매 환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했다.
하지만 그 덕에 나는 그들의 삶과 의식에 아주 깊이 있는 공감을 할 수 있었고, 책의 끝에 다다르고 나니 나 또한 그들과 한 치의 다를 바 없는 그저 인간임을 마주하였고, 그로 인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특히 내가 느끼기엔 해당 작품엔 서로에게 긍정의 힘이 되어 주는 존재는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그저 각자의 시선과 시각을 통해 삶을 살아가고 타인을 대할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우리 인간 모두가 각자의 속에 품고 있는 진짜 본모습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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