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생각

20) 오늘 너 생일이길래 연락해봤어. 생일 축하해! 잘 지내지?

Hazel Y. 2023. 10. 7. 22:48

매일 아침 나의 단잠을 깨워버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는 종종 나를 짜증나게 한다.

 

아, 너무 피곤한데. 더 자고 싶은데.

그냥 다시 침대에 누워버릴까.

잠시만 한 5분만 더 눈만 붙이고 있다가 일어나면 안 될까.

 

아니야, 바로 일어나야지.

다시 누워버리면 일어나기 더 힘들어져.

얼른 침대에서 나와서 이불 개고 오늘 할 일 해야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10초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침대 끝에 걸터앉아 폭풍처럼 몰아치는 이러한 내적 갈등을 겪는 나는 대부분 바로 일어나는 것을 선택한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창문을 열고 화장실로 가 얼굴에 물을 끼얹으며 정신을 차리려 했다.

 

그러곤 방으로 돌아와 불을 켜고 양볼과 이마에 총 세 장의 토너 패드를 올려놓았다.

 

5분 정도 토너가 피부에 흡수될 동안 책상 앞에 앉아 휴대폰을 확인했다.

 

내가 자는 동안 혹시 새롭게 온 알림이나 연락이 있나 싶은 기대와도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이는 나에게 휴대폰이 생긴 이후로 매일마다 지속되고 있는,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의식의 흐름이다.)

 

하지만 여전히 졸린 눈을 겨우 뜨고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는 나의 눈 앞에 보여지는 것들은 딱히 확인할 필요 없는 광고성 앱 푸시 알림이나 메일들 뿐이었다.

 

오늘도 역시나 별 소식 없군.

 

그러나 나는 나에게 연락을 해오는 사람이 많이 없어도 아쉽거나 슬프거나 외롭거나 하는 감정은 딱히 없는 것 같다.

 

매일 아침 이러한 확인 과정이 끝나면 나는 휴대폰 잠금 화면의 카카오톡 위젯을 눌러 앱을 켠다.

 

받은 연락이 없더라도 매일 내가 아침에 해당 앱을 여는 이유는 단 하나다.

 

오늘 생일인 친구가 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생일을 챙기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엄청난 걸 해주진 못해도 그 사람의 생일인 날에 작은 간식이라도 주길 원했다.

 

상대가 기뻐하고 나에게 고마워하는 반응을 보이면 그걸 보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는 반 친구들의 생일을 알아내어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전날 집에서 작은 종이 가방 안에 과자를 한 가득 담고, 다음 날 학교에 챙겨 가 그 친구의 책상 옆 고리에 걸어놓곤 했다.

 

개인적인 내 생각으론 고등학교 3년 내내 적대적 관계인 친구는 없었기 때문에 모든 반 친구들의 생일을 그렇게 챙겨주었다.

 

갓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과 같은 반 (대형과라 반이 나뉘어져 있었다) 동기들 모두에게 주로 카톡 선물하기로 기프티콘을 주며 생일을 축하해주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조건적으로 넓은 인맥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여 모두와 가깝게 잘 지내길 원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리 인맥의 풀이 넓어도 그 중 나와 정말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은 한 손에도 충분히 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생일을 챙기는 사람들의 수 또한 확 줄게 되었다.

 

내가 꼭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거나 원래도 꾸준히 연락을 하고 지낸 사람이 아니면 따로 생일을 챙기지 않게 되었다.

(이건 내가 20대 초반이 끝나갈 때쯤 하게 된 '나를 위한 인간관계란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의 결과 중 하나였다. 이 부분도 나중에 블로그 글로 다뤄보고 싶다.)

 

그러다 오늘 카톡 위젯에 숫자 '1' 이 떠있길래 습관처럼 들어가 확인해봤다.

 

고등학교 친구였다.

 

학교 다닐 때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나름 가깝게 지냈던 친구였다.

 

특히 내 기억에 자습실 책상도 붙어있거나 가까이 있었어서 적어도 나에게는 꽤 친밀한 친구였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한 번도 만난 적도, 연락한 적도 없었다.

 

스스로 베프나 절친이라고 할 만한 친구가 한 명도 없었던 나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 친구의 소식을 조금씩 알게 된 건 올해 7월 귀국 후 나의 인스타 본계정을 비활하고 공스타 계정을 본격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 계정을 만든 건 유학할 때였지만, 당시 주로 본계정을 썼기 때문에 공스타 계정은 공부하는 타임랩스 영상을 며칠 찍어 올리고는 그냥 방치해두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공부러가 되면서 그곳에 나의 공부 기록을 열심히 남기고 있다.

 

무튼 해당 계정은 팔로워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인스타 피드를 끝없이 내리며, 또 다른 사람들의 인스타 스토리를 보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고 공부에 집중할 시간을 더 확보하고자 운영하는 계정이기 때문에 그것이 그 취지에 맞다.

 

그래서 팔로워 수를 늘리거나 많은 사람들을 팔로잉하는 그런 수고는 따로 들이지 않는다.

 

그 얼마 되지 않는 팔로워들 중 한 명이 오늘 생일을 맞은 그 친구이다.

 

내 공스타 계정을 팔로우하는 고등학교 친구는 단 세 명 뿐인데, 그 중 한 명인 것이다.

 

가끔 올라오는 그 친구의 인스타 스토리를 보며 언제 한 번 연락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했지만, 연락할 타이밍과 구실을 딱히 찾지 못했다.

 

아, 얘는 요즘 이렇게 사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생일이라는 구실이 생겼다.

 

오늘 너 생일이길래 연락해봤어. 생일 축하해!

잘 지내지?

 

그러나 연락이 끊긴 채 꽤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혹시나 나의 연락을 달가워하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다.

 

한두 시간 뒤, 답장이 왔다.

 

조금 긴장되었다.

 

답장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내가 가졌던 그런 걱정들이 모두 무색할 정도로 그 친구의 반응은 아주 긍정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여태껏 내가 오랜만에 연락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밝게 나의 선톡을 받아준 것 같다.

 

한시름 놓았다.

 

오늘 용기 내어 한 연락 덕에 조만간 그 친구와 약속을 잡기로 했다.

 

서로 소식을 모른 채 흘려보낸 시간이 긴 만큼 만나서 할 얘기도 많을 것 같아 벌써부터 설렌다.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면 좋겠다.

 

- 25.677살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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